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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의 천사 / 잭레이] Return
2016. 7. 30. 19:42 - Elysee



*사랑하는 것도, 사랑받는 것도 모르는 세상이었다. 주어진 폐허에 익숙해져 다른 세상이 있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권태와 허무에 젖어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물들어간다. 그 날도 어느 때와 다름없었다. 무참히 도륙하고 남은 잔해에 적막만이 흘렀다.

아이작 포스터는 습관처럼 뒤를 돌아봤다. 굴러다니는 주인 모를 손모가지를 발로 툭, 찬다. 무심하게 굴러간 시신의 조각 끝에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이 닿았다. 어두침침한 구석이었다. 그림자와 기둥에 가려 유심히 봐야 알아차릴 수 있을만큼.

작은 소녀였다. 죽은 눈을 한 채 제 옆에 있는 시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름끼칠 정도로 무감각한 시선이었다. 그는 신경질 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위에서 내린 명령은 개미 한 마리도 남기지 말고 몰살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소녀의 옆에 널브러진 여자의 시체를 보며 막연하게 소녀의 부모일 것이라 짐작했다. 저 가느다란 목을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꺾일 것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아. 그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철수하고 저 혼자 남은 후였다. 언제나 뒷정리는 그의 몫이었으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인기척이 들렸음에도 불구하고 소녀의 시선은 시신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이.”

 

잭은 발끝으로 소녀의 무릎을 쳤다. 그제야 소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기분이 나쁠 정도로 텅 빈 시선이었다. 차라리 살려달라고 빌었다면 뒷맛이 나쁘지는 않을 터다. 하지만 저렇게 체념한 듯, 모든 것을 포기한 눈을 보고 있자면 역겹다 못해 기분이 더러웠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살려달라고 빌어봐.”

 

소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미세하게 일그러진 것 같기도 했다. 눈동자는 느릿하게 움직여 그의 눈과 똑바로 마주했다. 소녀의 입술이 달싹였다.

 

나를 죽여줘.”

 

씨발. 어째서 기분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그는 소녀에게서 누군가의 얼굴을 겹쳐보았다. 뒷맛이 더럽다.

 

 

 






차라리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워봐. 네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해.

 

침대에서 떨어짐과 동시에 깨진 꿈은 산산이 조각나 실마리조차 남지 않았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른거렸지만 금세 잊혀졌다. 커튼 사이로 한 낮의 햇살이 비쳐 들어온다. 시계는 오후 두 시를 가리켰다.

의자에 얌전히 앉은 소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마치 인형처럼 미동하지 않은 채 허공을 바라보는 것 뿐, 어떠한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내가 뭐 하러 저런 애물단지를 주워왔지.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노릇이었다. 보스의 명령이 어긴 것이 되니 들키면 즉결처분이겠지만 그는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 두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이 죽인 자의 정체도 모르는 일이다. 그저 명령 받은 대로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는 것의 반복일 뿐. 그러니 소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녀의 생사를 결정짓는 것이 자신의 손에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무엇보다 죽어달라는 사람을 순순히 죽여줄 정도로 그는 성격이 좋지 않았다.

 

.”

 

소녀의 시선이 그에게 내리꽂혔다.

 

언제쯤 죽여줄 거야?”

 

또 그 소리냐.”

 

이건 뭐 아침인사도 아니고. 구겨진 이불을 대충 제쳐놓고 부엌으로 향한다. 아침거리가 될 만한 것들을 꺼내들고 아무렇게나 요리했다. 제법 배가 고플 것이 분명함에도 소녀는 표정에 변화는 없다. 엉성한 요리에 군데군데 타버린 음식의 정체에 잭은 얼굴을 찌푸렸다. 몇 없는 접시에 대강 담고 소녀의 앞에 들이 밀었다.

 

먹어라.”

 

소녀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잭은 다시 한 번 재촉했다. 먹으라고. 먹으면 죽여줄 거야? 네가 내 마음에 들면. 그의 짧은 대답에 소녀는 그제야 수저를 집었다. 맞은편에 앉아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잭은 무신경하게 턱을 괴며 물었다.

 

그렇게 죽고 싶으면 목이라도 매던가.”

 

소녀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느릿하게 말했다.

 

그건 안 돼.”

 

왜 안 되는데.”

 

그렇게 하면 미움 받아.”

 

뭔 개소리야. 소녀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의 집에 도사리고 있는 적막만이 소녀의 소리에 맞춰 고요히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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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의 동 가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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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키는 대로 쓴거라서 다음편을 쓸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