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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과 함께 들어주세요!)









세상이 푸르게 보인다면 그건 무슨 징조일까. 푸른색은 결코 아름답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시퍼렇게 멍이 든 것처럼 울긋불긋하게 피어나 시선을 어지럽혔다.

집안이 고요하다. 소녀는 무감정한 눈빛으로 어두컴컴한 내부를 훔쳤다. 이제는 어떠한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거실에는 죽은 어머니가 고요히 누워 있을 것이고, 자신의 앞에는 눈을 부릎뜬 채 죽어버린 아버지가 있다. 소녀는 자신의 손을 축축하게 물들인 붉은 액체를 무성의하게 옷에 닦아냈다. 언젠가부터 소녀의 시간은 멈췄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신은 평범해질 수 없다. 조금만 밖으로 눈을 돌리면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도, 자신은 그 곳에 끼어들 수 없다. 참견하는 것 자체가 죄악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질식할 때까지 숨을 멈췄다. 자신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하는 것은. 무엇때문에 나는 당신을 죽였을까. 그토록 살고 싶었던걸까. 하지만, 자신은 단 한 번도 살고 싶어하지 않았다.

소녀는 사그라드는 마지막 불빛을 보며 자신 앞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은빛 물체를 보았다. 결말은 이미 정해져있다. 망설이거나 외면할 필요없어. 비로소 해방될 수 있는거야. 마지막 탈출구는 참으로 달콤하고 유혹적이다. 순간은 고통스럽겠지만 그 뒤로는 영원히 잠들 수 있을테니.

소녀가 칼을 들고 제 목을 찌르려는 순간이었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그림자 속에서 들렸다.


“어이.”


낫을 든 남자였다. 소녀는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았지만 칼은 놓지 않았다. 초점이 흐린 눈동자를 보며 남자는 소녀의 손에 든 칼을 빼앗아들었다.


“뭐하냐, 너. 네 주제에 죽으려고 했다고?”


시시껄렁한 남자의 말투는 아련한 울림을 담고 있었다. 마치 어디서 들어본 듯한. 


“언제는 죽여달라며 쫓아다니더니 옛날에는 이랬단 말이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찬 남자는 칼을 저멀리 던져 버리며 으름장 놓듯이 말했다.


“널 죽일 수 있는 건 나 뿐이야, 레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그걸 누가 정했는데?”


“내가.”


남자는 거실의 풍경을 보았다. 피비린내가 지독하게 코를 찌른다. 그는 소녀를 내려다보며 한글자씩 힘을 주어 강하게 말했다.


“네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어. 사람 죽인 게 대수냐? 그러니까.”


남자는 숨을 들이켰다. 답지 않게 긴장한 모습이었다.


“미래에서 기다릴게. 그러니까 죽지마라.”


널 죽일 수 있는 건 나뿐이야. 소유욕 강한 목소리와 함께 남자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소녀는 그저 가만히 앉아 눈을 깜빡였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오래전부터 저 남자를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가 말한대로 미래에 그와 함께 할 것이란 강한 확신이 들었다. 소녀는 더 이상 던져진 칼날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제 막 새벽이 끝나고 시작을 알리는 빛이 서서히 차가운 하늘을 물들였다. 소녀는 하염없이 창밖을 보며 그가 한 말을 되새겼다. 소녀의 등 뒤에서는 시체가 썩어가고 있지만 밖은 하염없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작게 미소지었다.






*




처음 생각했을 때는 되게 좋았는데 쓰고다니까 그저 그렇네요 ㅠㅠㅠ 보시다시피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미래에서 기다릴게, 라는 대사를 모티브로 했습니다. 

글을 오랜만에 써서 참 어색하네요.